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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 보다 더 무거운 죄 덧글 0 | 조회 4,202 | 2014-11-07 22:35:17
안재욱  

살인죄 보다 더 무거운 죄
이름도 희한한 죄가 있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갖고 있는 죄다.
이 죄는 육법전서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사형수가 저지른 죄보다 더 무겁다.
사형수의 죄는 감형이나 사면이 되기도 하지만 이 죄는
그렇지가 않다.
이 죄는 일찍 알면 알수록 사람에게 큰 득이 된다.
마치 암을 일찍 발견하고 일찍 치료하면 낫는 거와 같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나이가 많아져 늙어서야 이 죄를 깨닫는다.
그리고 회한에 잠긴다.
임종에 자신의 이 죄를 뉘우치지 않는 이 거의 없다.

‘인생 낭비죄’

사람들은 무지하고 어리석고 고집이 세고 난 잘났다는 생각에
혹시 누가 자기에게 그런 죄가 있으니 짓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주어도 곧이 들으려하지 않기 일쑤다.
깊이 새겨 간직하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일러주는 사람에게
“너나 잘 하세요”한다.

어떤 사람은 그 죄를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지
않는 죄라고도 한다.
그 말도 맞다.
그러나 이 죄는 굳이 성현이 아니라도, 보통사람이라도 남에게
일러줄 수 있다.
알면서도 짓지 않기가 어려운 게 이 죄다.
오욕락에 탐착하는 죄가 그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도 아니다.

오욕락에 빠졌다해도 그 속에서 헤어나면
이 죄에 걸리지 않는다.
도대체 그 죄가 무어냐고 조급증을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위해 힌트를 준다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세월은 쏜살같다”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다”
이보다 절실한 말을 쓴다면
“인명(人命)은 호흡지간에 있다”가 될 것이다.
옛 선비의 시조 한 수도 이 죄를 아는데 큰 도움이 된다.
“잘 가노라 닫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마라,
부디 쫓지 말고, 촌음(寸陰)을 아껴 쓰라, 가다가 중지 하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
이 정도도 부족하면 하나 더 들어보자.
“오늘 배우지 않으면서 내일이 있다 하지 말고, 올해 배우지
않으면서 내년이 있다 하지 마라, 해와 달은 가고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오호라 늙어지면 이 누구의 허물인고”

이쯤하면 그 죄는 “학문을 게을리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거다.
그러나 그 답도 온전한 답은 아니다.
이제 그 죄가 어떤 죄인지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나는 결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앙리 샤리에르는 법정에서 간절하게 절규했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그는 다른 죄수들과 함께 한번 가면 다시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지옥의 감옥으로 보내졌다.
생사람도 잡아먹는 곳으로 이름 붙여진 그 곳은 한 줄기
햇빛도 들어오지 않아 그야말로 암흑 그 자체였다.
그 곳에서 그는 고독과 허기 그리고 절망으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굶주림에 지친 그는 깜빡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지옥의 재판관을 만났다.
그는 얼음처럼 차갑게 생긴 재판관에게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곳에 오게 되었음을 하소연한다.
재판관은 그에게 ‘네가 정녕 죄가 없단 말이냐. 그렇지 않다.
너는 유죄다.
그 죄명은 인생낭비죄’라고 선언한다.
‘빠삐용’이란 영화를 본 사람은 옛 기억이 되살아날 것이다.

벗어나는 길은 ‘나날이 새롭게’

낭비는 물자든 정신이든 죄다.
인생을 낭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설날, 음력 정월초하루를 보내며 인생낭비죄를 곱씹는다.
그리고 그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나날이 새롭게(日日新又日新)’에 있음도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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