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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창시자 커넬 샌더스 덧글 0 | 조회 5,607 | 2014-11-07 05:51:36
안재욱  

KFC 창시자 커넬 샌더스

커넬 샌더슨이라 분만큼 많은 역경에 직면했던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22세 때 램프 제조 판매업을 하다 전 재산을 탕진해 버렸다. 주유소 경영에 뛰어든 그는 39세 때 대공황으로 인해 또 다시 전 재산을 날려버렸습니다. 40세 때 주유소를 경영하다가 후에 식당과 모텔을 운영했습니다. 이 때 아들이 죽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49세 때는 화재로 식당과 모텔이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재기하여 레스토랑을 시작했고, 66세 때는 새 고속도로 건설 계획으로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으며, 또 다시 전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급기야는 하는 사업마다 망한 절망감과 아들마저 잃은 충격으로 커넬 샌더스는 정신병까지 앓게 됩니다. 정신병 때문에 결국 사랑하던 그의 아내마저도 그를 떠나 버리게 됩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절망과 낙심과 상처 속에 괴로와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조그마한 교회 예배당에서 들려오는 찬송소리를 듣게 되어집니다.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어려워 낙심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너 쓸 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찬송가432장)


이 찬송소리를 듣고 커넬 샌더스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주님, 제가 평생 예수님 없이 돈만 벌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한참 동안 울며 회개의 기도를 하다가 커넬은 갑자기 정신이 맑아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날로 병원에서 검진해보니 정신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되어집니다.


샌더슨은 기도하고 힘과 지혜를 얻어 자신이 가진 11가지 치킨 양념 비법을 사 줄 식당을 찾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1,008개의 식당이 낡은 트럭에 압력솥과 양념통을 싣고 나타난 생면부지 노인의 제안을 “당신을 어떻게 믿고 투자하겠느냐”며 거절했습니다. 그는 1,009번째 방문한 식당에서 ‘예스’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샌더슨은 그 식당을 출발점으로 전 세계에 3만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KFC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는 나에게는 맛있는 치킨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고, 세상 사람들이 언젠가 이것을 알아줄 것이라는 꿈을 황혼을 넘긴 나이에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척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어려움을 믿음으로 견디어내면서 결국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는 전 세계 48개국에 6000점포라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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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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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했던 시절


그의 이름은 할랜드였다.
1890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가 6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생계를 꾸려야 했던 그의 어머니를 대신해 커넬은 3살짜리 남동생과 어린 여

동생을 돌봐야만 했기에 집에서 요리를 하게 되었다. 7살이 되던 해에 그는

웬만한 요리는 곧 잘 할 수 있었다.



그가 10살 되던 해, 농장 근처에서 월 2$ 을 받으며 처음으로 일을 하기 시작

했다. 커넬이 12살 때, 그의 어머니마저 재혼을 하여 가정을 떠났다. 그는 초

등학교를 중퇴해야만 했다.



어린 시절은 불행하였지만 강직한 성격의 할랜드는 청년이 되어 꿋꿋이 그

의 삶을 개척해 나아갔다. 직업군인으로 쿠바에 파견 되었다. 제대 후' 변호

사의 꿈을 꾸기도 했던 그는 철도노동자, 보험 외판도 했으며, 오하이오강의

유람선에서도 일했으며, 타이어도 팔았고, 편의점이 딸린 주유소에서도 일

했다.


모두 고된 일들이었지만 강직하고 철저한 서비스 마인드로 열심히 살았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자녀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대공황과 함께 그의 나이 40세에 그는 무일푼이 되었다.
하지만 할랜드는 좌절하지 않았다.


"샌더스 카페" 성공 그러나 계속되는 불운...


켄터키주 코빈(Corbin, Kentucky)의 조그마한 주유소에서 일을 하던 어느 날,
그 주유소를 지나가던 한 손님의 내 뱉은 "이 마을에는 먹을 것이 없어!"

라는 한 마디의 불평은 그의 평안한 인생에 일대 전환점을 가져온다.



평소 요리를 좋아했던 그는 주유소의 안 쓰는 창고에서 어릴 적 어머니가 가

르쳐주신 조리법들로 직접 요리하여 배고픈 여행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당시 프라이팬으로 닭요리를 하던 것과는 달리, 그는 압력솥을 이용한 속성

닭튀김 요리법을 개발했다.



돈이 없었기에 본격적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한 것은 아니었고, 주유소에 들

르는 여러 여행객들에게 손수 만든 음식을 분식점 규모로 (테이블 하나에 의

자 여섯 개) 제공한 것이었다.



점점 더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자, 그가 일하던 주유소 건

너편에 142명이 앉을 수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 후 커넬 샌

더스의 식당 이름은 점점 더 퍼져나갔다.


45세 되던 해, 켄터키 주지사 루비 라푼(Ruby Laffoon)으로부터 그의 치킨을

켄터키주의 대표적인 요리로 승화시킨 것을 기리는 의미로 켄터키주의 명예

대령 커넬(colonel)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이후로 ‘커넬 샌더스’로 불려

지며 마을 유명인사가 된다.

1939년 커넬의 식당이 맛있는 음식점 등을 소개하는 잡지 던칸 하인즈 "Adv

entures in Good Eating"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카페로 번 돈으로 모텔을

지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의 레스토랑과 모텔은 화재로 모두 전소되고

만다.



그 후, 그는 그 자리에 142석의 대규모 레스토랑을 다시 지었다. 하지만 국가
도로사업계획으로 1년도 안되어 헐값에 레스토랑을 처분해야 했다.



아무리 재기하려고 수없이 오뚝이처럼 일어서봤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거듭

된 실패로 인한 빚더미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사랑하던 아들을 잃게

되고 그의 아내마저 그를 떠난다.


그렇게 커넬 샌더스는 그의 나이 60세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은 충격과

엄습하는 좌절 그리고 절망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었고 결국 정신병원

에 입원하고 말았다. 모든 것이 야속하고 미워졌다.



늘 자신의 평탄하지 못했던 삶에 대하여 “주님께서 나를 이 땅에 살려 두시

는 것은 나를 사용하시거나 아니면 나를 벌주시기 위해서이다.” 라고 말해왔

던 그는 마침내 하나님과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게 되었고 스스로 비관하여

목숨을 끊기로 작정한다.



밤이 오기를 기다렸던 커넬 샌더스는 늦은 밤이 되자 아무도 몰래 병원 문을

나섰다. 어떻게 하면 부질없는 목숨을 끊을 수 있을까 궁리하며 밤거리를 배

회하던 그때' 그의 귓전에 어디선가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찬송가 소리가 들

려오기 시작했다.



소리를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작은 예배당으로 이끌려 갔더니 한 늙은 부인

이 혼자 앉아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마음은 뜨거

워졌다.



그리고 그 부인과 같이 기도하다가 통곡하기 시작했다. 한참 울며 회개하고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힘이 생겼다. 자살하려

던 생각과 근심' 걱정' 염려' 미움이 모두 사라졌다.


무일푼에서 KFC 창업자로


그날 밤' 기도 중에 정신병이 다 낫는 체험을 한 뒤 커넬 샌더스는 무슨 일이

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나이도 많고 돈도 없고 오

라는 곳도 없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65세의 그는 처음으로 받은 사회보장기금 105달러를 갖고 자신만이 가진 달
란트' 닭튀김 비법을 설파하기로 결심하고 자기의 중고 포드 승용차에 압력
솥을 싣고 전국을 다니면서 그의 조리법을 소개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1009번 실패 뒤 성공

68세에 희망을 잡았다.


한 겨울 시린 찬바람이 콜로라도 평원을 휩쓸던 날, 어느 레스토랑 앞.

새하얀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은, 뚱뚱한 체구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한 사람이, 마치 온 세상의 고민을 몽땅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쓸쓸히 서 있었다.

‘이번이 벌써 999번째 퇴짜구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게 무슨 비참한 꼴이냐.’

이런 생각이 들자, 그때까지 낙담이라고는 몰랐던 노인에게도 슬픔이 밀물처럼 몰려와,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였다.

그 때, 골목에서 놀고 있던 아이 몇 명이 다가와,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하얀 옷을 입었어요. 그리고 왜 아까부터 계속 눈을 감고 서 있기만 하세요.”

그러자 노인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쓱 닦고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음, 이 할아버지는 말이야. 몇 년 뒤 이곳에 커다란 식당을 하나 지을 거란다. 장사가 너무너무 잘돼서, 요리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도시의 끝까지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가 될 거야.

할아버지는 오늘처럼 하얀 옷을 입고, 손님들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할 거란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너무 맛있어서 뼈까지 녹는 듯한 환상적인 치킨요리를 드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이지.

그걸 상상하고 있자니, 가슴이 떨려서 움직일 수조차 없을 지경이란다. 현재를 보면 슬프기도 하지만, 미래를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기만 하구나. 이 할아버지는 또다시 꿈을 행해 나갈 거란다”

65세에 105달러로 창업, 그러나 퇴짜 또 퇴짜
그러나 그는 앞으로도 10번의 실패를 더 맛봐야 했다. 이 노인의 이름은 커넬 할랜드 샌더스로, 당시 67세였다.

그는 자신의 치킨요리 프랜차이즈 계약을 따내기 위해, 미국 전국을 돌아다니는 중이다.

잠은 유일한 재산인 낡은 포드승용차에서 자고, 세면은 공중화장실에서 하고, 식사는 스스로 만든 닭튀김으로 해결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치킨을 맛있게 튀기는 기술뿐이었다. 그는 레스토랑 주인에게,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맛있는 치킨요리법을 가르쳐주고 로열티를 받는 사업을 구상해냈다.

당시는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의 발상은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레스토랑 주인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잡상인으로 오해해 설거지 물을 끼얹기도 하고, 아들뻘 되는 사장이 “이제 그만 나이를 생각하고 쉬세요”라며 거만한 설교를 늘어놓기도 했다.

나중에 전기작가들은 “그는 2년 동안 아무 일도 안하고, 오직 거절당하는 일에만 종사했다”고 썼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절망 대신, 그는 이런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져보았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보탬이 될 만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처음 시작된 것이 바로 KFC 프랜차이즈 사업이다.

3년 넘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려 1009곳에서 거절을 당했지만, 그는 ‘나에게 은퇴라는 말은 없다. 어떠한 역경이 닥쳐와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나는 계속 움직일 것이다’라고 다짐하며, 새로운 꿈을 향해 전진해 나갔다.

그는 무수한 거절의 말을 들으면서도, 결코 “내 요리는 형편없어. 나는 아마 실패할거야”라고 말하지 않았고, 언제나 “내 요리는 완벽해. 나는 성공할 거야”라고 말했다.

“실패와 좌절은 인생 살면서 겪는 공부”
그는 절망 대신 희망을 가졌고, 우는 대신 웃었으며, 방황하는 대신 행동했다. 자신을 박대한 사장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포자기하는 대신 세상을 감싸안았으며, 항상 기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68세 때 1010번째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첫 계약을 따낸 것이다.

첫 계약자는 피터 허먼이었다. 샌더스의 치킨 맛에 매료된 허먼은, 치킨 한 피스당 4센트의 로열티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또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이라는 이름도 제안했다.

이렇게 출발한 KFC는 현재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약 1만3000여 곳의 매장을 가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성공했다.

KFC의 오너는 계속 바뀌었고, 그가 사망한 지 벌써 26년이 지났지만, 샌더스는 여전히 KFC를 상징하는 인물로 남아 있다. KFC 로고에 있는 온화한 미소의 할아버지가 바로 그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훌륭한 생각, 멋진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뭅니다. 저는 남들이 포기할 만한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는 대신, 무언가 해내려고 애썼습니다.

실패와 좌절의 경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공부의 하나랍니다. 현실이 슬픈 그림으로 다가올 때면, 그 현실을 보지 말고 멋진 미래를 꿈꾸세요.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세요. 인생 최대의 난관 뒤에는 인생 최대의 성공이 숨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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